삼성 라이온즈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꾸준함의 대명사’로 불렸던 박한이.
데뷔부터 은퇴까지 오직 삼성 유니폼만 입은 원클럽맨이었지만, 화려한 커리어만큼이나 굴곡도 많았던 선수입니다.
이 글에서는 박한이의 선수 시절부터 논란, 그리고 지도자로 돌아온 지금까지를 한 번에 정리해 봤습니다.
박한이는 누구인가? 삼성의 프랜차이즈 외야수

(사진 출처 : 이데일리)
박한이는 1979년 1월 28일생으로, 동국대를 졸업하고 2001년 계약금 3억 원에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습니다.
입단 당시 삼성 신인 타자 중 최고액 계약금을 받았을 만큼 구단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죠.
데뷔 첫해부터 김응용 감독의 눈에 들어 곧바로 1번 타자 겸 중견수로 낙점받았고, 이후 대구의 외야를 오랫동안 지킨 삼성의 간판 외야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명타자로도 활약하며 2001년부터 2019년까지 무려 19년간 삼성에서만 뛴 진정한 원클럽맨입니다.
박한이의 주요 커리어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삼성 한국시리즈 7회 우승 기여 (2002·2005·2006·2011·2012·2013·2014년)
- 2013년 한국시리즈 MVP 수상
- 2001년부터 16시즌 연속 세 자릿수 안타 기록
- 개인 통산 2,174안타 (은퇴 당시 KBO 개인 통산 안타 4위, 이후 후배들이 추월해 2026년 기준 6위)
특히 팬들 사이에서는 두 차례 FA 때 모두 ‘착한 계약’을 했다고 해서 ‘착한이’라는 애칭으로 불릴 만큼 사랑받는 선수였습니다.
박한이 등번호는 삼성의 상징이 된 33번

(사진 출처 : 일간스포츠)
박한이 등번호 하면 떠오르는 숫자는 단연 33번입니다.
현역 시절 내내 등에 새겼던 번호이자, 팬들에게 박한이 그 자체로 각인된 번호죠.
박한이가 2019년을 끝으로 그라운드를 떠난 이후, 33번은 사실상 ‘비공식 영구결번’처럼 취급됐습니다.
2025 시즌까지도 그 누구도 33번을 달지 않고 비워뒀을 정도였는데요.
후배 선수들 역시 레전드를 상징하는 이 번호를 쉽게 선택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반가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2026년, 박한이 코치가 다시 33번을 되찾은 것입니다.
코치로 복귀한 뒤 74번을 달고 있었지만, 2026 시즌 선수단 등번호 발표에서 7년 만에 자신의 상징인 33번으로 돌아오며 팬들의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박한이 부인은 누구?

(사진 출처 : 더팩트)
삼성 라이온즈 박한이 전 선수의 아내는 최명진이 아닌 배우 출신의 조명진 님으로, 1979년생이며 서울예술대학교 방송연예학과를 졸업한 뒤 2000년 MBC 29기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했습니다.
데뷔 이후 드라마 호텔리어, 어쩌면 좋아, 뉴하트 등 여러 작품에서 단아한 미모와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였으며, 특히 인기 드라마 주몽의 유화부인을 모시는 무덕 역과 선덕여왕의 신녀 설매 역을 맡아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2006년 지인의 소개로 동갑내기인 박한이 선수와 인연을 맺은 그녀는 약 3년간의 진지한 열애 끝에 2009년 12월 백년가약을 맺었으며 슬하에 딸을 두었습니다.
박한이 부인 조명진과 협박 사건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박한이 부부와 관련해서는 2015년에 이른바 ‘협박 사건’이 있었는데요.
당시 한 인물이 박한이의 사생활에 대한 허위 게시글을 올리며 논란이 일었지만, 결과적으로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게시글의 핵심 내용은 완전한 허구로 결론났고, 2015년 8월 삼성 라이온즈 공식 홈페이지에 협박범의 사과문이 올라오면서 박한이 부부가 오히려 이 사건의 피해자였다는 점이 명확해졌습니다.
즉, 세간에 떠돌던 이야기와 달리 박한이 부부는 억울하게 협박을 당한 쪽이었던 셈입니다.
박한이 음주 불명예 은퇴
(영상 출처 : KBS News)
박한이의 커리어에서 가장 뼈아픈 순간은 박한이 음주 관련 사건입니다.
2019년 5월 27일 오전, 박한이는 자녀를 등교시킨 뒤 귀가하던 길에 접촉사고를 냈습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매뉴얼에 따라 음주 측정을 한 결과,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정지 수준인 0.065%로 나왔습니다.
전날 늦은 저녁을 먹으며 마신 술이 다음 날 아침까지 남아 있었던, 이른바 ‘숙취 운전’이었습니다.
의도적인 음주 운전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법적 기준을 넘긴 명백한 실수였고 박한이는 이에 대해 스스로 무거운 책임을 지기로 결정합니다.
박한이 은퇴, 스스로 내려놓은 유니폼

(사진 출처 : YTN)
박한이 은퇴는 바로 이 음주 사건과 직결됩니다.
박한이는 사고 당일 곧바로 삼성 구단을 찾아가 “책임지고 은퇴하겠다”라는 뜻을 밝혔습니다.
2018 시즌 후에는 세 번째 FA 권리마저 포기하며 “한 팀에서 오래, 즐겁게 뛰는 것도 선수가 누릴 수 있는 행운”이라고 말했던 그였지만, 그 즐거움을 한순간의 실수로 스스로 내려놓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박한이는 은퇴식도 없이, 다소 허망하게 19년의 선수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은퇴 직전인 2019년 5월 26일 키움전 끝내기 안타가 그의 통산 2,174번째 안타이자 사실상 마지막 안타로 남았습니다.
박한이 영구결번 유력했지만 무산된 명예

(사진 출처 : 뉴시스)
박한이는 삼성 팬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박한이 영구결번 후보로 자주 거론되던 선수였습니다.
스탯티즈 기준 삼성 한 팀 한정 누적 WAR 4위에 오를 만큼 압도적인 누적 성적을 남겼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클러치 능력을 발휘하며 7번의 우승에 기여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명예롭게 은퇴했다면 33번의 영구결번이 유력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음주 운전으로 인한 불명예 은퇴로 인해, 은퇴식은 물론 영구결번 역시 공식적으로는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했듯 팬들과 후배들이 33번을 오랫동안 비워둔 것을 보면, 공식 지정만 안 됐을 뿐 마음속으로는 이미 영구결번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한이 근황, 지도자로 돌아온 레전드

(사진 출처 : OSEN)
마지막으로 박한이 근황입니다.
은퇴 후 박한이는 약 1년 6개월간 자숙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회봉사활동 징계로 복지관에서 180시간의 봉사활동을 성실히 이수했고, 라오스로 건너가 야구 재능 기부 활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충분한 반성의 시간을 거친 뒤, 2020년 11월 23일 박한이는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로 그라운드에 복귀했습니다.
복귀 당시 그는 “야구장에서 사죄하겠다”라는 각오를 밝혔죠.
이후 2군 타격코치를 거쳐 현재는 삼성 라이온즈 1군 타격코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6년, 자신의 상징이었던 33번을 다시 달며 완전한 재기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선수로서 남긴 아쉬움을 지도자로서 채워가고 있는 셈입니다.
마무리
박한이는 삼성 라이온즈 역사상 손꼽히는 외야수이자 프랜차이즈 스타로, 화려한 성적만큼이나 마지막이 아쉬웠던 선수입니다.
음주 운전이라는 한순간의 실수로 은퇴식도 영구결번도 놓쳤지만, 진정성 있는 자숙과 봉사 끝에 지도자로 다시 야구장에 선 박한이.
7년 만에 33번을 되찾은 그가 이제는 코치로서 삼성 라이온즈의 새로운 전성기를 이끌 수 있을지, 팬들의 기대가 모이고 있습니다.





